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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영화 드라마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by 홍차23 2020. 8. 2.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2020.08.01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게루에게 어느 날 부러진 서핑보드가 나타난다. 그리고 시게루는 파도 위에서는 온전히 자신과 바다만 존재하는 서핑의 세계에 빠져든다. 환경미화원 일도,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점점 뒤로 미뤄지고 시게루의 세상에는 서핑뿐이다.

 

  처음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서핑의 세계, 파도를 타는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다가 슈트도 없이 부러진 서핑보드를 들고 맨몸으로 바다에 나선다. 바보라고 그를 놀리던 이들도 시게루의 꾸준한 열정에 차츰 차츰 시선을 빼앗긴다. 영화는 계속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려낸다. 때로는 시게루가 바다와 서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게루의 여자친구, 동료, 같은 마을 서퍼들이 시게루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시선과 시선을 이어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서핑을 향한 시게루의 조용하지만 강렬한 열망이 담긴다. 그 눈빛 속에 여름, 그리고 가장 조용한 바다가 모두 있는 것 같다. 파도 위에서 넘어지는 것조차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수없이 넘어지는 그를 향해 비웃고 무용한 일을 한다고 얕잡아 보지만,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은 시게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그는 고요히 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람에 맞춰 파도를 타러 간다.

 

  우연히 서핑보드를 만나 파도타기의 매력에 빠지고, 매일매일 파도 위에서 넘어지는 실패의 경험을 쌓아서 마침내 서핑대회에서 상을 타고, 모두의 축하를 받고, 그러던 어느 날 시게루와 여자친구의 사진이 붙은 서핑보드만 남겨진 해변의 모습을 비추기까지 2시간 남짓의 잔잔한 영상이 시게루의 여름을 담아낸다. 마치 인생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잠깐의 성취를 하고, 그리고 사라진다.

 

  시게루는 사라졌지만, 슬픈 일처럼 비춰지지 않았던 것은 시게루는 시게루의 삶을 살다 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충분히 음미하고 떠난 그는 후회가 없다. SINK OR SWIM, 시게루의 서핑보드에 새겨진 말처럼 우리의 순간도 무수한 파도와 같다면, 파도 위에 올라서거나 물에 빠지거나 온몸으로 도전해야 알 수 있는 실패와 성공의 반복 속에서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서핑보드를 옆에 끼고 묵묵히 앞만 보고 가는 시게루와 보드 뒤쪽을 잡아주는 여자친구의 그림같은 평화로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바다와 서핑으로 채워진 파아란 여름 영화였다. 우연히 참여하게 된 영화모임에서 모임장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 조용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공수래 공수거같은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그림그리고 싶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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