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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독서노트

안티고네_누가 진실을 보는가

by 홍차23 2020. 12. 12.

출처: 위키백과

 

  독서모임을 계기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었다. 고전이라 어려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술술 넘어가고 대사와 극의 구조도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흥미로웠다. 그리스로마신화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자신이 결혼한 아내가 알고보니 오래 전에 잃어버린 어머니였던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을.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왕의 첫번째 딸이 바로 안티고네이다. 오이디푸스 자체도 비극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스스로 눈을 도려내고 왕위에서 내려온 이후 그 가족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아들 둘이 교대로 테베를 통치하기로 했으나, 아우가 형에게 양위할 차례가 되었을 때 변심했기 때문이다. 

 

  이후 첫째 아들 폴리네이케스가 망명했다가 타국의 병사를 이끌고 테베를 공격하고 형제는 서로를 찔러 죽인다. 그리고 재상이자 안티고네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비극인데, 크레온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형제에게는 국장을, 외국을 끌어들인 형제에게는 반역자의 형벌로 매장조차 금지하며 형제를 묻어주기 위해 분투하는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 이 책을 추천받고 책의 줄거리를 찾아봤을 때는 왜 이미 죽은 형제를 매장해주기 위해 왕의 명령에 반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지 안티고네의 의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왜 목숨을 걸까. 안티고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법은 오늘이나 어제를 다스리지 않고, 인간의 시간을 넘어선 영원을 다스린다.” 또한 “왕의 권리가 내 권리를 가로막진 못한다.” 안티고네에게 자신의 형제를 매장하여 죽음의 신의 영역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신의 법을 따르는 인간으로서의 의무이자 자신의 권리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자신의 권리를 국가가 제한하는 것에 대해 안티고네는 죽음, 죽음을 향한 고통까지 각오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으로 비극적 영웅의 길을 떠난다.  

 

  반역자이기에 매장을 금하는 형벌을 내림으로써 국가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과 형제의 죽음을 애도할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개인의 입장이 충돌한다. 극 속의 주변 인물들의 말을 들어보면, 양쪽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둘 모두 자신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윤리적인 정의라고 믿음으로써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극은 끊임없이 말한다. 네가 진실을 ‘보고' 있느냐고.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는 눈먼 자이며, 안티고네는 왕명을 어기고 형제를 매장한 벌로 끝내 죽음의 신의 영역인 동굴 속 어둠에 갇혀 버린다. 하지만 안티고네가 형제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측은하게 여기던 민심이나, 그 민심을 전하던 막내 왕자 하테온의 진언까지 모두 귀를 막고 눈을 감았던 크레온이야말로 어둠에 잠긴 사람이 아니었을지. 

 

  결국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돌이키려했던 크레온은 한 발 늦어 연인 안티고네와 함께 죽음을 택한 자신의 아들 하테온, 그 소식을 듣고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두 아들 모두 잃게 한 크레온에 대한 원망으로 자살한 아내까지 비극의 소용돌이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게 된다.

 

  역자는 해설에서 극의 주인공인 안티고네보다도 크레온에게 더욱 가혹한 운명이 닥치게 된 것은, 안티고네는 자신의 선택의 결말을 알고 행동했으나 크레온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티고네의 비극이 크레온의 비극으로 이어지기까지 둘의 차이점을 명쾌하게 설명한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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