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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일상 글쓰기

진격의 거인과 갇힌 존재

by 홍차23 2021. 1. 19.

  바다를 보고 왔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눈이 내렸고, 낙조를 보러 간 그곳에는 구름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노을과 미친듯이 휘날리는 바닷바람, 파도가 있었다. 끝도 없는 바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파도치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 보면 내 모든 고민들이 그저 티끌같고 그냥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바다가 존재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최근에 전화영어를 할 때 ‘행복'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행복하냐고 물어서 행복하다고 대답했더니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이 주제로 통화한 사람 중에서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정도로 다들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난 오히려 그게 놀라웠다. 그리고 이어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언제 행복한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나에게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그리고 자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는 큰 만족감을 준다. 

 

  갇힌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요즘 인기있는 진격의 거인 1기를 보고 있다. 전에는 징그러운 거인들이 나오는 일본만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궁금해서 보고 나니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꽤 흥미롭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류를 잡아먹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거인'의 등장으로 인해 인류는 스스로 높은 벽을 쌓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인류의 적 거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군인을 양성해서 거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노력하지만, 그런 전투는 명목상 전투일뿐 사실상 힘 있는 존재들일수록 벽의 안쪽으로, 약한 존재일수록 가장자리에 가장 위험한 곳에 노출되어 거인들의 먹잇감 역할을 하는 약육강식의 현실을 그려낸다. 사람들은 평화가 계속됨에 따라 벽 안에 있으면 안전할거라는 생각에 안주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비웃듯 더 강한 거인들이 나타나서 벽을 한 방에 뚫어버린다. 마치 지금까지 그럴 필요가 없어서 부수지 않았을 뿐이라는듯이. 

 

  인간이 감히 대적하기조차 어려운 적에게 취하는 태도가 흥미롭다. 어떤 사람은 반복되는 무력함에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기도 하며, 연구대상으로 삼아 알아낸 사실들을 활용하여 상대방을 정복하고자 하기도 한다. 

 

  거인에 의해 갇혀 있는 상태에서도 누군가는 벽 밖의 세상을 꿈꾼다. 모래로 가득한 땅, 얼음으로 뒤덮인 땅, 물로 가득한 땅 등으로 묘사된 책 속의 성밖 세상에 대해 알고자 한다. 왜 목숨을 걸고 밖의 세상을 알고자 하느냐는 물음에 주인공은 세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답한다. 

 

  진격의 거인에서 스스로 쌓은 벽으로 인류를 지키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가두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질병으로부터 보호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격리해야만 하는 세상. 갇힌 존재들은 처음에는 벽이라는 물리적 장벽에 의해 갇혀있을 뿐이지만 그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마음까지도 벽 안에 갇혀 버린다.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마음까지 갇혀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화상미팅으로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면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낯설기까지 하니 내 마음도 나도 모르게 갇혀버리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한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보면,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의 증언을 통해 모든 것이 통제되고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의 자유뿐일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이 묘사되어 있다. 수용소 안에서는 사회적 지위도, 재산도, 심지어 옷조차 제대로 소유할 수 없는 벌거벗은 한 인간만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삶을 포기하지 않고, 굴욕을 견뎌내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빅터에 따르면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상황과 같이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일 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시련을 견뎌냄으로써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를 말한다. 그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에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적극적인 삶을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창조함으로써,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으로는 아름다움과 예술,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외부적인 힘에 의해 창조와 즐거움 모두 추구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그 목적을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가끔씩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나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의 상쾌함은 자연을 찾는 마음일까. 그리고 코딩이나 요리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면 뿌듯한 마음, 가족이나 친구와 재밌는 대화를 했을 때 느껴지는 충만함 그런 것들이 내 삶을 이루며, 나를 자유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외부적 통제를 비롯하여 육체적, 정신적 한계 등 다양한 제약이 항상 존재하지만 나는 언제나 보다 더 자유롭고 세계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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